유레일 패스를 이용해서 파리에서 바르셀로나를 거쳐 발렌시아에 도착했다. 뷰놀의 토마티나 하루 전이다. 혹시 몰라 하는 생각으로 미리 부뇰로 답사를 가기로 했다. 발렌시아역에서 부뇰로 가는 통근 열차를 탔다. 1시간 30분 정도 걸려서 부뇰역에 도착했다. 그리 크지 않은 역이다. 역을 나서면 오른쪽으로 작은 가게가 있다. 여기서 콜라를 사서 마시면서 구글 지도를 켜고 토마티나가 열리는 곳으로 찾아갔다.
초행이다 보니 모든 게 낯설었다. 길을 잘못 들어섰나 싶은데 작은 성이 나타났다. 부뇰성이다. 미리 공부해 놓은 자료에는 없는 곳이다. 조금 아래로 관광안내소가 있었다. 카미노에 대한 자료를 얻고 몇 가지 물어보다가 토마티나에 입장료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돌다리도 두들겨가며 건너랬다고 몇 번이고 물어서 결국 팔목에 붙이는 티켓을 샀다. 티켓 얘기도 미리 공부해 놓은 자료에는 없었기 때문이다.
골목을 따라 내려가면 토마티나 하는 곳이라고 안내를 받고 꾸불꾸불한 골목길을 따라 내려갔다. 동네가 마치 우리의 달동네 같았다. 높은 곳에 성이 있고 그 아래로 꾸불꾸불한 골목길을 따라 내려가는 길이다. 초행이다 보니 꽤 멀어 보였지만, 드디어 뿌에블로 광장에 도착했다. 부뇰시청 앞과 부뇰 사회노동당사 앞까지의 거리가 토마티나의 메인 사이트다. 중요 건물에는 꾸미지 않은 듯이 군청색 천막을 가려져 있었다. 토마토 냄새는 나지 않았다.
부뇰 사회노동당사 앞의 엘 리트로 바에서 몇 가지 안주 거리에 맥주를 마셨다. 영상으로는 봤지만 오늘 이곳은 토마티나와는 전혀 상관없는 거리로 보였다. 토마티나 장면을 어떻게 촬영할지 생각하다가 발렌시아로 돌아왔다. 부뇰역으로 돌아가는 길은 내려왔던 길이 아니라 큰 도로를 따라서 걸어 올라갔다. 내일은 이 길을 따라서 내려올 것이라고 생각했다.
발렌시아역에서 부뇰로 가는 통근 열차는 미리 예약해 놓기를 잘했다. 부뇰로 가는 기차에는 사람들이 꽤 많았다. 대부분 단체 티셔츠를 입고 있었는데, 축제 여행 동호회로 보이는 사람들도 있었고, 토마티나 애프터 파티라는 티셔츠를 입은 사람들도 있었고, 대부분 서서 가면서 토마티나에 대한 얘기를 하는 것처럼 보였다.
역 광장으로 나오니까 사람들이 꽤 많다. 대부분 여기서 만나서 뿌에블로 광장으로 걸어가는 것 같았다. 사람들 뒤로 8톤 정도의 대형 트럭이 크락숀을 울리면서 지나간다. 딱 봐도 토마토를 실은 트럭처럼 보였다. 몇 대가 지나갔다. 괜히 긴장감이 생긴다. 드디어 토마티나구나 라는 느낌이다.
어제 발렌시아로 돌아오기 위해 올라왔던 길을 따라 내려간다. 길을 따라 물안경과 티셔츠를 파는 사람도 있다. 샹그리라를 파는 사람도 있다. 믹서기를 가져다 놓고 음악을 트는 사람도 있다. 대충 토마티나 분위기를 연출하는 느낌이다. 샹그리라를 한 잔 사서 마시면서 언덕길을 따라 내려갔다.
뿌에블로 광장 길 입구에는 사람들이 더 북적였다. 특이한 복장을 한 사람들이 꽤 있었다. 토마토 복장을 한 사람, 원피스 수영복을 입은 남자 등이다. 몇몇 사람은 물안경을 쓰고 있었다. 시작 시간이 가까워져서 쁘에블로 광장 쪽으로 갔다. 발디딜 틈이 없이 사람이 많았다. 아직 토마티나가 시작하기 전이지만 열기가 후끈후끈 달아올랐다. 몇몇 건물에서 토마티나가 끝나면 청소를 위한 호스를 이용해서 물을 뿌렸다. 물이 몸에 닿을 때마다 사람들이 소리를 질러댔다. 분위기가 점점 달아올랐다.
시청사와 사회노동당사 사이의 기둥에 걸려있는 하몽을 따면 토마티나가 시작된다고 하는데, 내가 있는 곳에서는 거리가 있어서 잘 보이지 않았다. 결국 사람들이 환호성을 지르는 것으로 봐서는 드디어 토마티나가 시작된 것 같았다. 결국 토마티나가 시작된 것은 아까 봤던 8톤 정도의 대형 트럭의 크락숀 소리로 알게 되었다.


대형 트럭이 크락숀을 울리면서 다가오면 트럭 위의 사람들이 토마토를 사람들에 던져댔다. 몸에 맞으며 그렇게 아프지는 않았는데 눈에 맞으면 꽤 둔탁한 느낌이다. 물안경을 왜 쓰는지 알겠다. 몇 대의 대형 트럭이 지나가면 트럭 위에서 던진 토마토가 땅 위에 흥건하다. 사람들은 이 토마토를 주어서 대형 트럭 위로 던지기도 하고 주위의 사람들에게 던지기도 한다. 처음에는 싱싱한 토마토 냄새가 나지만 조금 지나면 토마토가 익어가는 냄새가 난다. 그 후로는 조금 상한 느낌의 냄새가 나기도 한다. 이때쯤 정말 물안경이 필요하겠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떤 남자가 여자 친구를 목마를 태웠다가 사람들의 집중 타겠이 되었다. 여기 저기서 날라 오는 토마토를 엄청 맞고서야 여자 친구가 남자의 목에서 내려왔다. 거의 울지경으로 보였다. 어디서 토마토가 날아오는지 모른다. 가끔씩 툭하고 볼이나 눈에 토마토가 부딪친다. 조금 아프다.
꽤 시간이 흘렀다. 대형 트럭은 더 이상 오지 않는다. 여기저기서 시원한 물이 하늘로 뿌려진다. 대충 토마티나가 끝난 것 같다. 뿌에블로 광장 거리에서 사회노동당사 앞으로 이동했다. 여기는 아직도 한창이다. 사회노동당사 벽 난간에 사람들이 몇 명 서있었는데 여기저기서 토마토가 날아든다. 엄청 맞는 것 같아 보였다. 그래도 좋단다. 조금 지쳐간다. 그때 축포가 터졌다. 사람들이 환호성을 지른다. 이제 공식적으로 토마티나가 끝이 났다.
뿌에블로 광장 길 입구에서 일행을 만나서 콜라를 마셨다. 엄청 시원하다. 그런데, 헐! 이 사람은 옷에 토마토가 조금도 묻지 않았다. 어떻게 된 일이냐고 물었더니 멀리서 카메라에 토마티나 장면을 담고 있었다고 한다. 대단하다. 아무튼 이제는 온몸에, 옷과 신발에 묻은 토마토를 정리하는 게 걱정거리다.
부뇰역으로 가는 언덕길 좌우로 주택가인데 그중 몇 집에서 2유로를 받기도 하고 5유로는 받기도 하는데, 집 앞마당에서 토마토를 씻어내게 해준다. 5유로는 샴푸를 하게 해주는 서비스다. 소문으로는 근처의 개울에 모여서 토마토를 씻어낸다고 하는데 어디인지 알아내지는 못했다. 부뇰역에서 발렌시아역으로 돌아오는 기차편은 예약을 해놔서 앉아 올 수는 있었는데, 좌석에 비닐을 깔고 앉아서 와야만 했다. 가끔씩 기차문이 열리면 토마토 익어가는 냄새가 온 기차 안을 가득 채웠다.

호텔에 들어와서 옷을 벗어서 세탁하고 말려서 비닐 봉투에 넣고 한국에 돌아왔다. 한국에 돌아와서 또 토마티나 때 입었던 옷을 세탁해서 말렸다. 몇 일이 지난 후 그때의 옷을 입었는데 아직도 토마토 익는 냄새가 났다. 결국 그때의 옷은 일반쓰레기전용 봉투에 넣어 버렸다. 지금도 가끔씩 토마토 쥬스를 해 먹으려고 토마토를 잘게 썰다 보면 토마토 익는 냄새가 난다. 그러면 온몸에 토마토 범벅이던 그때의 토마티나가 생각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