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박사칼럼] 재활용 성지로 부상한 산촌, 가미카츠 ‘제로 웨이스트 센터’

일본 도쿠시마현 산간 지역에 위치한 가미카츠는 도쿠시마 시내에서 자동차로 약 한 시간 거리의 작은 산촌이다. 산길을 따라 정상에 오르다 보면, 오래된 지방의 건물과는 사뭇 다른 인상의 현대적인 건물이 눈에 띈다. 외관부터 ‘재활용’이라는 메시지를 분명히 드러내는 이곳이 바로 가미카츠 제로 웨이스트 센터다. 말 그대로 ‘쓰레기를 없애겠다’는 선언에서 출발한 가미카츠의 상징적인 공간이다.
가미카츠는 2003년 일본 지방자치단체 가운데 최초로 ‘제로 웨이스트 선언’을 한 지역이다. 당시만 해도 쓰레기 문제는 행정의 영역으로만 여겨졌고, 주민이 적극적으로 개입하는 방식은 낯설었다. 그러나 가미카츠는 쓰레기 감축(Reduce), 재사용(Reuse), 재활용(Recycle)이라는 이른바 ‘3R’을 전면에 내세우며 마을 전체를 실험의 장으로 삼았다.


그 결과는 수치로도 분명하게 나타난다. 가미카츠에서 발생하는 폐기물의 재활용률은 약 80% 수준으로, 일본 전국 평균 20% 안팎을 크게 웃돈다. 2021년 기준 가미카츠의 재활용률은 79.9%로 집계됐으며, 한국의 같은 시기 재활용률(약 59.5%)과 비교해도 높은 수준이다.


▲ 45가지 분리수거, 주민을 움직이다
가미카츠의 핵심은 철저한 분리수거다. 이곳에서는 쓰레기를 무려 45가지 항목으로 나누어 배출한다. 처음에는 주민들의 반발도 컸다. 특히 고령 인구가 많은 지역 특성상 ‘쓰레기를 버리러 가는 일 자체가 부담’이라는 목소리가 적지 않았다. 실제로 제로 웨이스트 정책 초기에는 마을을 순회하며 설명회를 열어도 선뜻 찬성하는 주민을 찾기 어려웠다고 한다.


가미카츠가 주목한 돌파구는 ‘음식물 쓰레기’였다. 가정 쓰레기의 약 40%를 차지하는 음식물 쓰레기를 줄이지 않으면 전체 배출량 감축은 불가능하다는 판단에서다. 마을은 음식물 쓰레기를 가정에서 처리할 수 있도록 퇴비화(컴포스트)를 적극 장려했다. 약 5만 엔에 달하는 전통식 퇴비화 설비를 자부담 1만 엔 수준으로 설치할 수 있도록 보조금을 지원했고, 이로 인해 보급률은 80%에 달했다.


이러한 정책은 쓰레기 배출량 감소뿐 아니라 주민 부담 완화라는 두 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았다. 냄새와 부패로 민원이 잦던 음식물 쓰레기가 사라지자, 분리수거에 대한 주민들의 인식도 점차 바뀌기 시작했다.

▲ 쓰레기장에서 태어난 ‘호텔’과 ‘가게’
가미카츠 제로 웨이스트 센터는 단순한 폐기물 처리 시설이 아니다. 센터 내부에는 주민과 방문객이 자유롭게 교류할 수 있는 공간, 사무실, 그리고 숙박시설까지 함께 조성돼 있다. 특히 ‘HOTEL WHY’라 불리는 숙박시설은 제로 웨이스트 생활을 직접 체험할 수 있는 공간으로 주목받는다. 폐목재와 재활용 자재를 활용한 인테리어는 투박하지만, 메시지는 분명하다.


센터 한편에는 ‘쿠루쿠루 숍’이 자리하고 있다. 마을 주민이 더 이상 사용하지 않는 의류, 그릇, 생활용품 등을 무료로 가져가거나 저렴한 가격에 재유통하는 공간이다. 이곳에서 한 달에 재활용되는 물품만 해도 약 550kg에 달한다. 가격은 정해져 있지 않고, 각자가 ‘내고 싶은 만큼’ 지불하는 방식이다. 자율과 신뢰를 전제로 한 구조다.

 

이러한 공간들은 쓰레기를 비용이 아닌 ‘자원’으로 인식하게 만드는 중요한 장치로 작동한다. 주민들은 쓰레기를 잘 분리하면 단순히 환경을 지키는 것을 넘어, 다시 마을로 환원되는 가치를 체감하게 된다.

▲ 관광자원이 된 제로 웨이스트
오늘날 가미카츠는 인구보다 방문객이 더 많은 마을로 알려져 있다. 제로 웨이스트 센터를 비롯해 워케이션 시설, 자연을 활용한 체험형 공간들이 조성되면서 국내외 시찰단과 관광객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캠핑장과 로지, 계곡과 산책로가 어우러진 환경은 ‘환경 정책을 보러 오는 여행지’라는 독특한 이미지를 만들어냈다.


흥미로운 점은, 이 모든 변화의 출발점이 1990년대 소각장 문제였다는 사실이다. 소각로 건설과 관련한 규제 강화로 기존 방식이 한계에 부딪히자, 가미카츠는 주민 참여형 분리수거라는 전혀 다른 해법을 선택했다. 9종에 불과하던 분리 기준은 22종, 35종으로 늘었고, 지금의 45종 체계로 진화했다.

 

▲ 2030년을 향한 새로운 과제
가미카츠는 당초 2020년까지 ‘쓰레기 제로’를 달성하겠다는 목표를 세웠지만, 현실의 벽은 높았다. 재활용률 80%를 넘긴 지금도 남은 20%는 쉽게 줄지 않는다. 이 과정에서 마을은 중요한 교훈을 얻었다. 주민과 행정의 노력만으로는 한계가 있으며, 기업과 연구기관 등 외부 주체와의 협력이 필수적이라는 점이다.


이에 가미카츠는 2030년을 새로운 목표 시점으로 설정하고, ‘제로 웨이스트 타운’ 계획을 추진 중이다. 제조 단계부터 재활용을 전제로 한 제품 설계, 유통 구조 개선, 순환경제 모델 구축이 핵심 과제로 떠오르고 있다. 일본 전체의 페트병 재활용률은 높지만, 원래의 페트병으로 다시 사용하는 ‘수평 리사이클’ 비율은 아직 20% 수준에 머물러 있다는 점도 과제로 지적된다.


가미카츠는 말한다. 제로 웨이스트는 환경 정책이 아니라, 지속 가능한 마을을 만드는 하나의 수단이라고. 작은 산촌에서 시작된 이 실험은 이제 지역 재생과 관광, 주민 참여를 아우르는 모델로 진화하고 있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여전히, 쓰레기를 대하는 태도의 변화가 자리하고 있다.

작성 2026.02.01 18:48 수정 2026.02.01 1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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