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제탐방기] 비바 산토 니뇨, 핏 시뇰!

[퀸 후아나가 이끄는 시눌록 퍼포먼스 팀]

 

내가 꼭 가보고 싶은 축제 중에 아직 못 가본 축제가 셋 있다. 태국 치앙마이의 러이 끄라통, 이펑 축제와 일본의 아키타 요코테의 가마쿠라, 센다이 지오의 스노우몬스터 축제와 필리핀 세부의 시눌록 페스티벌이다. 얼마 전 밀린 숙제를 하듯, 시눌록에 다녀왔다.

 

 시눌록은 필리핀을 대표하는 축제이다. 우리나라에는 브라질 리우 카니발과 같은 열정적인 퍼레이드로 알려졌다. 꽤 많은 축제 전문가가 다녀왔는데, 그렇게 유명세는 타지 않았다. 유럽 중심의 축제가 유명하고 아시아의 축제는 일본 삿포로의 유키 마츠리, 중국 청도의 맥주축제, 태국 치앙마이의 송크란 정도가 알려졌을라나.

 

 시눌록은 우리로 치면 연등회 연등축제 정도 쯤 되는 축제이다. 마젤란이 필리핀에 왔을 때, 추장의 부인이 세례를 받고 기념으로 받은 아기 예수상을 들고 춤을 춘 것을 모티브로 축제가 시작됐다고 한다. 필리핀의 카톨릭의 시작을 축하하는 축제인데, 그 상징이 추장의 부인이 들고 춤을 춘 아기 예수상이 되었다.

 

 여행 일정은 어정쩡했다. 15일 밤에 출발하여 16일 새벽에 세부에 도착했다. 공항에 도착해서 차를 타고 숙소에 도착해서 체크인을 하고 숙소 근처를 돌아보다가 김밥천국과 비슷한 두끼라는 곳에서 새벽인데 늦은 저녁을 먹었다. 소불고기 덮밥과 돼지불고기 덮밥이다. 꽤 맛있었다. 아직 한국에 있는 것 같은 느낌이다. 숙소에 들어와서 씻고 잠을 잤다. 어정쩡한 1박 2일의 일정이었다.

 

 오기 전에 시눌록에 대한 공부는 꼼꼼하지 못했다. 대략적으로 18일에 펼쳐지는 그랜드 퍼레이드에 대한 것이었다. 도착해서 알게 됐지만 우리 숙소는 그랜드 퍼레이드가 펼쳐지는 중요한 지점이었다. 이곳에서 모든 참가팀이 멈춰서서 퍼포먼스를 펼치고 가는 곳이었다. 관람석이 설치된 곳이 있었는데 도착한 날 새벽에 숙소 근처를 돌아볼 때 관람석을 설치하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관람석에서의 관람은 무료였는데 선착순인 것 같았다.

 

 대충 자고 일어나서 일정의 여유가 있어서 수산 시장에 가서 회를 먹기로 했다. 구글 검색으로 찾은 곳은 수투킬 시푸드 마켓이었다. 사진이 그럴싸했다. 공항 근처의 라푸라푸시 근처에 있었다. 여기서부터가 말 그대로 산 넘고 바다 건너 다리 건너서... 개고생이었다. 일단 학생들의 도움으로 비프(오래된 필리핀 버스인 지프니의 신식 버전의 버스, 우리 마을버스 크기인데, 1톤 화물차로 만든 버전도 있음)를 타고 아얄라몰 근처에 내렸다. 그곳의 터미널서 버스를 탔다. 지프니나 비프 모두 통로식 좌석이다. 이 버스는 우리의 버스와 같은 좌석과 같았다. 여기서는 브이 하이얼이라고 한다. 이 버스를 타고 라푸라푸시의 입구에서 내렸다. 여기서 지프니를 타고 어렵게 어렵게 수투킬 시푸드 마켓에 갈 수 있었다. 도착하자마자 사진 빨에 속았다는 느낌이 들었다. 서둘러 그곳을 빠져나와서 지프니를 타고 다시 라푸라푸시의 입구에 내렸다.

 

 새벽에 늦은 저녁을 먹고 지금까지 아무것도 먹지 못했다. 배가 고파서 짜증나는 시간은 이미 지나서 오후 3시가 넘은 시간이다. 라푸라푸시에 내렸을 때 지나가며 봤던 스시집을 찾아갔는데 아직 공사중이었다. 2층의 음식점에 들렸다. 함께 갔던 감독님이 케이준 스타일의 해물탕을 시켰는데, 내가 너무 배가 고파서 또 다른 해물탕을 시켰다. 서빙하는 직원이 생각할 때는, 이놈들 걸신들린 놈이라고 생각했겠다 싶다. 아무튼 고수향 조금 나는 케이준 스타일의 해물탕과 또 다른 해물탕을 시켜서, 전식으로 나온 미역국을 두 번씩 리필해서 먹고 조그마한 파전을 두 번씩 리필해서 먹고 공기밥 두 그릇씩과 산미구엘 맥주 세 병씩을 마시고 일어섰다. 개고생하고 먹은 식사여서 그런지 엄청 맛있었다. 여기가 쿡펍이라는 곳이다. 16일의 일정은 이게 전부이다. 구글에 속아서 한 개고생과 보상으로 인생 해물탕을 먹은 것이 전부인 하루였다.

 

[스포츠 센터에서 펼쳐진 공연]

 17일은 퍼레이드의 출발점이자 공연이 펼쳐지는 스포츠 센터 근처를 답사해보기로 했다. 내일은 그곳에 엄청난 사람들이 몰려들 것이라 못 갈 것이라서 미리 돌아보기로 했다.

 

 사실 오늘 아침 일찍 여객선 터미널에서는 해상 행진과 산토니뇨 성당까지 퍼레이드가 있었고, 어제는 퍼레이드 여왕 선발대회가 있었다. 사전에 꼭 공부해두지 않으면 그 축제를 충분히 즐길 수 없다는 사실을 다시금 깨닫게 된다.

 

 도로는 벌써 대부분 차단되었다. 오스메냐 분수 회전교차로에서 왼쪽으로 돌면 여기서 꽤 멀리까지 관람석이 도로를 점령하고 설치되어 있었다. 여기 관람석도 무료이고 선착순이다. 전날이어서 아직까지 사람들이 많지는 않았다. 스포츠 센터는 종합운동장과 같은 곳이다. 이미 무대가 설치되어 있었고 몇몇 팀이 리허설을 하고 있었다. 함께 간 박종부 감독님은 리허설 장면을 영상으로 담고 있었고, 난 어제의 허기가 생각나서 길거리 음식을 사가지고 왔다. 따가운 햇볕에 리허설을 보다가 졸다가 하다가 숙소로 돌아가기로 했다.

 

 우리가 걸어왔던 그 도로는 또 다른 풍경이었다. 엄청난 사람들이 어디론가 걸어가고 있었다. 나중에 알았지만 산토니뇨 성당으로 향한 걸음이었다. 수많은 사람들이 성모의 기도를 하며 성가를 부르며 산토니뇨 성당으로 걸어가고 있었다. 순례였다. 꽤 더운 날씨였다. 감동이었다. 미리 알았더라면 박종부 감독을 꼬셔서 이 순례에 참여할 수 있었는데, 박종부 감독님은 기독교보다는 카톨릭이 더 좋단다.

 

 다시 오스메냐 분수 회전교차로에 왔다. 이곳은 야시장이다. 동그란 원 안에 꾸며진 야시장이다. 이벤트 프로모션을 하는 기업체의 부스와 작은 공연을 하는 무대가 설치되어 있고 일반적인 먹거리 부스와 로컬 먹거리 부스가 섞여 있었다. 요란법석이었다. 이 공간은 시눌록 기간 동안 계속 운영된다.

 

 저녁은 눈썰미 좋은 박종부 감독님이 오고 가며 발견한 한식 뷔페에서 먹기로 했다. 한쪽에는 야채와 반찬이, 중앙에는 일곱 가지 정도의 음식이, 그 옆에는 몇 가지 국이 비치되어 있었다. 테이블에는 세 종류의 삼겹살이 놓여 있었다. 냉장고에서 맘껏 음료를 가져다 먹어도 된다. 이 모든 게 우리 돈 만이천원 정도의 가격이다. 엄청 맛있었는데, 현지인도 꽤 있었다. 이 정도면 K-푸드, 세부 현지에서 먹힐 것 같았다. 내가 눈여겨 본 이유는 따로 있다. 난 이 정도의 뷔페를 아파트 단지 입주 사업으로 해보고 싶은 생각이 있어서다.

 

 이 여행을 함께 하기로 한 박종부 감독의 픽이 좋은 것이 있다. 우선 숙소다. 우리가 묵은 숙소는 내부 시설이 낡았다는 것과 화장실이 낡았다는 것을 빼고는 시눌록 축제 탐방을 위한 최고의 장소다. 또 어제의 쿡펍과 오늘의 한돈 뷔페이다. 나의 픽은 구글에 속아서 하루를 공친 수투킬 시푸드 마켓이다. 폭망이다.

 

 어떤 사람은 도로가 아침 6시부터 막힌다고 했다. 저녁 7시 정도에 풀린다고 한다. 알아보니까 그랜드 퍼레이드는 9시 30분에 시작한다고 한다. 우리 숙소에서 내려다보면 퍼레이드 팀이 준비하는 모습이 다 보인다. 가끔씩 펼치는 퍼포먼스도 내려다 보인다. 정말 이 숙소 최고다. 거기에 운이 좋아서 제네랄 막실롬 애비뉴가 내려다 보이는 쪽이다. 촉 좋은 박종부 감독님. 퍼레이드가 시작되면 숙소에서 내려가 도로에서 퍼레이드를 보고 11시 반쯤에 숙소로 올라와 체크아웃을 하고 밥을 먹기로 했다. 어제 한돈 뷔페에서.

 

 모든 팀의 맨 앞은 퀸 후아나가 이끈다. 산토 니뇨상을 들고 기쁨의 춤을 추는 퀸 후아나이다. 그 뒤로 지역을 상징하는 퍼포먼스를 펼치는 무리가 따른다. 퍼포머의 의상이며 장식물이며 엄청난 수준이다. 퍼포머의 동작도 손끝까지 힘이 들어가 있다. 장난이 아니다. 그럼에도 표정은 웃음 가득이다. 무엇이 이들을 이렇게 열정적으로 만들었나? 종교의 힘인가? 필리핀의 카톨릭 전파가 이렇게까지 기뻐할 일인가? 수많은 순교로 전해진 한국의 카톨릭 신자로서 잘 이해가 되지 않는다.

 

 그랜드 퍼레이드에서는 오랜 경험으로 쌓여진 경륜이 느껴진다. 처음의 팀이 퍼포먼스를 하고 행진을 하면 멈춘 채의 퍼포먼스와 다른 퍼포먼스를 선보인다. 걸어가며 선보이는 퍼포먼스다. 다음 팀은 앞선 팀이 행진하다 멈추면 거기서 멈춰서 준비한 멈춘 때의 퍼포먼스를 선보인다. 다시 앞 팀이 이동하면 이동할 때의 퍼포먼스를 선보이다. 오늘도 걷는다는 우리의 퍼레이드와는 많이 다르다는 느낌이다. 무엇보다 너무 열정적이다.

 

 체크아웃을 하고 도로를 건너서 한돈 뷔페에 갔다. 벌써 많은 사람들로 꽉 찼는데 자세히 보니까 그랜드 퍼레이드를 응원하러 온 어떤 팀의 사람들이다. 그 사람들과 섞여서 구석에서 식사를 하고 있는데, 몇몇 외국인들이 들어와서 식당은 꽉 찼다. 우리는 눈치를 보고 자리를 내주었다. 여기에 가방을 맡기고 다시 그랜드 퍼레이드 속으로 나간다.

 

 아뿔싸! 점심시간이다. 퍼레이드 중에 다들 밥 먹으러 간다. 어떤 팀은 우리가 봤던 것처럼 식당으로, 어떤 팀은 준비된 음식을 제공해주고, 어떤 팀은 각자 알아서 근처의 거리 음식으로 점심을 먹으러 간다. 아 놔! 점심시간이 3시간이다. 퍼레이드 중에 점심을 먹는 것도 처음 봤고, 점심시간이 3시간이나 되는 것도 처음 본다. 우리한테는 말도 안되는 처음 보는 장면이다.

 

 아무튼 그랜드 퍼레이드는 3시경에 다시 시작됐다. 점심을 먹고 누워서 쾡한 눈으로 쉬던 사람은 없다. 다시 눈에 힘을 바짝 주고 행진이다. 오후의 팀은 기업의 협찬을 받는 팀인 것 같다. 지역에서 유명한 사람이거나 기업체의 광고 모델이 퍼레이드에 참여했나 보다. 주위의 학생들이 엄청 소리를 지른다.

 

 대충 퍼레이드를 보다가 가방을 맡겨 둔 한돈 뷔페로 왔다. 주인가 얘기하다 보니까 온통 막힌 도로의 상태가 늦은 시간까지 계속 된다는 얘기를 한다. 서둘러 가는 곳이 좋겠다는 얘기를 한다. 미리 알아둔 차가 다닐 수 있는 곳까지 서두르기로 했다. 곳곳에서 학생들이 소리를 지르며 싸구려 수성 물감으로 서로의 얼굴에 칠해대고 있었다. 치앙마이의 송크란에서처럼 흰색의 분말이 아니라 시커멓게 칠해진 학생들의 얼굴을 보니까 조금 겁이 났다. 몇몇 외국인은 즐기며 시커먼 얼굴로 거리를 돌아다니는데, 이제 공항으로 가기로 한 우리는 조금 겁을 먹었다. 한참을 뒷길로 걸어서 차량이 다니는 곳까지 왔다. 그런데 이제 택시가 잡히지 않는다. 오토바이를 탈까 생각했는데 거리가 만만치 않아서 망설였다. 운이 좋아서 곧 택시를 탔다. 이럴 때 택시는 미터기로는 가지 않는다. 운임을 합의하고 공항으로 가는 택시에 탔다. 생각보다 거리는 멀지 않았다. 꽤 많이 걸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 떠나는구나. 생각해보니까 좀 더 많이 공부를 하고 올걸이라는 생각이 든다.

 

 동남아시아의 여행이 보통 새벽에 현지에 도착하고 현지에서 새벽에 출발하는 비행편이 대부분이어서 공항에서 시간을 보내기에 어려움이 있다. 하지만 세부 공항은 좀 다르다. 미리 예약하면 방을 잡고 샤워를 할 수 있는 방법도 있고, 마사지를 받을 수 있는 방법도 있다. 공항에서 맥주를 마시며 시간을 보낼 방법도 있다. 공항에 와 보니까 시눌록과는 거리가 멀다. 그런데 귓가에 윙윙 거리는 소리가 난다. 비바 산토 니뇨, 핏 시뇰! 아기 예수님 만세, 주님 저희를 보살펴주소서. 내년에 다시 시눌록에 갈지 오랫동안 곱씹어 생각해보겠다.

작성 2026.02.01 18:57 수정 2026.02.01 18: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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