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축제와 지역 판타지

지속 가능성과 축제의 포괄성을 위하여

13회는 생활 속의 비일상을 꿈꾸는 이들을 위한 축제마을 몽도리(夢道里)가 생겼다. 몽도리는 소설가 이외수의 작품 『외뿔』에 나오는 상상의 마을로, 축제 기간에만 생기는 마임축제 마을이다....제18회 2006년에는 본격적으로 개막 난장 행사인 ‘아!水수라장’이 시작됐다. 불신과 분열을 일으켜 사람들을 괴롭히는 화신(火神)을 화합과 평화를 상징하는 수신(水神)과 시민들이 힘을 합쳐 물리친다는 주제로 물의 도시라는 이미지를 부각시키고...(출처. 강원일보)

 

이는 춘천마임축제의 성장기에 나온 언론 기사 중 일부다. 몽도리는 원래 이외수 작가의 우화집 『외뿔』에 나오는 100살 먹은 도깨비이다. 이것이 상상 마을로 전환된 것이다. 아기 도깨비 캐릭터는 ‘몽도리’, 불의 도시 폐막 공연은 ‘도깨비 난장’, 자원봉사자는 ‘깨비’라고 불리며 ‘깨비 댄스’를 춘다. 춘천마임축제는 말하자면 우리 전승 캐릭터인 도깨비 세계관을 가진 축제다. 축제는 호반의 도시 춘천을 이루는 물에서 시작해 물의 승화인 (도깨비) 불 난장으로 끝난다. 관객들은 이 세계관과 상징에 빠져든다.

 

축제에는 이처럼 프로그램을 넘는 더 큰 세계관이 있어야 ▲지속 가능성이 커지고, ▲축제와 그 지자체를 담는 이야기 포괄성이 커진다. 내가 2017년부터 3년간 춘천마임축제 총감독이 되었을 때 그 도깨비 세계관을 확장했으면 좋았을 텐데 그때는 축제를 보는 눈이 좁아 그걸 못했다. 그래서 그 아쉬움을 담아 2026년에 부안 축제추진팀의 협조로 ‘부안마실축제’와 ‘붉은노을축제’ 그리고 그를 포괄하는 부안군 이야기를 하나의 세계관 속에 판타지 형식으로 담게 되었다. 그 판타지가 책으로는 『꿈꾸는 여신, 마실 이야기』 (책 기준 200P 분량)이다.

 

시놉시스) 인천에 사는 여중생 2학년 지현이 엄마와 함께 5월에 열리는 부안마실축제에 갔다가 부안군에 있는 청자박물관을 들른다. 거기서 신비한 박물관장-채석강 할아버지-를 만나 빛이 바랜 책을 선물로 받는다. 그 책에는 마고할미와 여덟 장군, 그리고 마실 여신 이야기가 나온다. 마실 여신은 마고할미의 딸로 전국 방방곡곡을 돌면서 마실 문화를 만든 여신이다. 여신은 ‘한발’ 가뭄 신과 ‘씽씽’ 바람 신, ‘폭싹’ 홍수 신들을 달래 백성들의 삶을 안정시키고 마실 문화를 진작시키며, 가장 최근엔 젊은 세대에 속도 중독증을 일으키는 ‘붉은 여왕’을 혼내 부안에서 쫓아내는 마실 신력(神力)을 행사한다. 그 여신은 부안의 이야기에 매력을 느껴 부안에 거주하며 수많은 정령과 생명체들을 소환하는데, 그중에 마실 축제 문화를 위해 소환한 산들마실몬, 푸른바다몬, 붉은노을몬 세 몬이 있다. 몬들은 길게는 8천만 년 전에 존재했던 자연과 공룡알 정령들로 여신의 부름을 받고 기꺼이 환생해 부안 13화국(話國)의 서사를 완성해 간다. 

 

이번에 쓴 1권은 마실 여신이 큰 여신으로 주인공이지만 아마도 2권은 이 세 몬이 주인공이 될 것이다(후속편은 국민 공모도 가능). 이 신비한 책을 읽으면서 지현은 부안의 숨은 이야기, 정령들의 존재 확인으로 세계관 확장과 몰입, AI 비서와의 관계 재설정 그리고 엄마가 나의 마실 여신이었음을 깨달아간다는 내용이다. 이 원고는 시간이 부족해 원고, 편집과 교정, 디자인 작업만 마쳐 5월 축제에서는 QR로만 제작되었는데 10월 붉은노을축제 전에 단행본 책으로 배포될 예정이다. 

 

지자체와 판타지의 효용

 우리(작가와 지자체 담당관과 해설사 그리고 축제 대표 운영자) 추정이지만, 이로써 부안을 찾은 외부인들 혹은 단순히 축제를 즐기려 했던 사람들은 벅수, 이매창 박물관, 수성당 개양 할미, 채석강과 적벽강, 누에 타운, 청자박물관, 곰소 염전, 내소사, 위도 그리고 1읍 12면 농산물과 유적 등 부안에 숨은 수많은 이야기 공간을 찾아서 그 세계관을 경험해 보고 싶은 충동을 느끼게 될 것이다. 이는 기존에 지자체들이 주로 활용하던 ‘00 8경’, ‘00 7길’ 등 관광 마케팅과는 다른 시도이다. MZ세대들의 흥미를 끌 판타지 세계관과 이야기가 서로 긴밀하게 엮여있고 그 차별화된 이야기들을 가지고 새로운 프로그램, 굿즈 생산, 캐릭터와 조형물 만들기가 가능해지기 때문이다. 이로써 그 세계관에 공명한 이들은 부안을 한두 개 요소가 아닌 총체적으로 인식하게 된다. 중심엔 세계관을 잡아주는 ‘마실’이란 한국 고대 신화 기반의 여신이 있다. 

 

<꿈꾸는 여신, 마실 이야기> 책 표지

 

왜 판타지(fantasy) 형식인가? 

판타지는 <etymonline>에 따르면 14세기 초, ‘환상적인 모습’ 의미로 고대 프랑스어 fantaisie(비전, 상상력)에서 유래했고, 이는 원래 라틴어 phantasia, 그리스어 phantasia(상상의 힘; 외관, 이미지, 지각)에서 유래했다. 후기 그리스어에서는 ‘상상하다, 비전을 지니다.’ 뜻으로 쓰였다. 지금은 환상(幻想)이란 말로 통한다. 이 환상은 상상과 비전(꿈)의 유무로 해서 <왕과 사는 남자> 같은 허구의 역사 재구(再構)와는 다르다.

 

상상, 비전을 담는 판타지는 고대부터 현재까지 늘 가족들이 함께 즐기는 장르였다. 워낙 매력이 커서 오늘날 리얼리티 작품이라도 얀 마텔의 『파이 이야기』, 주호민의 <신과 함께>처럼 꿈, 신화, 상상과 상징 등 판타지 요소가 들어가 있는 경우가 많다. 판타지는 대체로 마법과 관련된 내용이 포함되어 있다. 특성상 다른 장르 혹은 배경설정과 결합하기 쉬워서 많은 서브 장르를 만들어낸다. 서브 장르로 뱅스 판타지(사후세계를 배경으로 역사적 인물들과 상호 작용하는 장르)/코믹 판타지/현대 판타지/다크 판타지/우화/메르헨 판타지/환상 문학/가스램프(혹은 스팀펑크) 판타지/신마, 검마 소설/그림 다크/하드 판타지/영웅 판타지/하이 혹은 로우 판타지/역사 판타지/이(異)세계물/LitRPG/마술적 사실주의/패러노멀 로맨스/사이언스 판타지/어반 판타지/위어드 픽션/중국의 선협물 등 아주 다양하다.

 

 영국의 SF와 판타지 연구자면서 작가인 파라 멘들레손은 2008년 책 『판타지의 수사학(Rhetorics of Fantasy)』에서 판타지를 “환상이 서사에 진입하는 수단”을 기준으로 다음처럼 분류한 바 있다.

 

포털 판타지(Portal fantasy): 환상적 요소들이 존재하는 판타지 세계가 따로 있고, 주인공이 그 세계 관문에 진입함으로써 서사가 성립하는 유형. 『오즈의 마법사』가 대표적이다.

 

몰입형 판타지(Immersive fantasy): 신화나 『반지의 제왕』처럼 작중의 세계는 하나의 완전한 세계이고, 그 세계 안에서는 환상적 요소들이 자연스러운 것으로서 의문시되지 않는 유형. 독자는 이 세계에 이미 익숙한 주인공과 인물들의 시각을 통해 작중 세계에 관한 정보를 얻게 된다. “경이의 감각을 의식적으로 부정하는” 서사 기법이며, 스타워즈 등 SF에 자주 쓰인다. 

 

틈입형 판타지(Intrusion fantasy): 환상적 요소가 현실을 침범해 오고, 이에 대한 주인공의 대응이 서사를 이끄는 유형. 우리가 사는 현실 세계를 배경으로 삼는 로우 판타지이고, 리얼리즘적이고 설명과 묘사에 의존적이다. 『드라큘라』, 『메리 포핀스』 , <주만지> 등이 있다. 

 

▶리미널 판타지(Liminal fantasy): 문턱 판타지. 환상적 존재가 현실 세계에 나타나는데, 그것이 이상하게 여겨지지 않거나 이상하게 여기는 지점이 상식과 다른 유형. 이로써 독자에게 소격효과를 발생시킨다. 조앤 에이컨의 <아미티지 가족>은 유니콘이 나타나자, 유니콘의 존재 자체가 아니라 유니콘이 월요일이 아닌 화요일에 나타났다고 놀란다.

 

산들마실몬, 푸른바다몬, 붉은노을몬 캐릭터 사진

 

이번에 부안에서 제작한 부안 큰 여신 마실 이야기는 틈입형과 리미널 판타지의 믹스에 해당한다. 처음에는 현실과 환상이 구별되지만, 뒤로 갈수록 환상적 요소가 주인공 지현에게 실제처럼 느껴진다. 마케터이면서 축제감독이었던 내가 이런 판타지 쓰기가 가능했던 이유는 마침 곧 발간을 앞둔 『상상 오디세이』를 필두로 ‘요정 판타지’ 쓰기를 이미 해 놓은 상태라 판타지 공부를 한 터이고 또 하나는 부안은 판타지를 쓰기에 적합한 이야기들이 많았다는 것 때문이다. 특히 마실은 흥미로운 존재였다. 판타지 전의 마실은 그냥 ‘마실 가는 행위’였으나 그것이 이 판타지로 인해 마고할미처럼 지역 창조와 수호신의 신격을 얻은 것이다. 

 

지역 홍보와 매출 증대, 공동체의 정체성 회복 등에 열심인 지자체에서 판타지는 활용성이 높다. 캐릭터 창출, 상품/서비스/굿즈 제작, 이야기를 통한 홍보, 나아가서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처럼 극의 제작 등에도 활용이 가능하다. 이를 활용하면 축제 홍보 3.0 버전으로 나아갈 수도 있다. 1.0 버전은 슬로건, 차별점 등을 활용한 단순 미디어 홍보고 2.0 버전은 (단순한 수준인) 캐릭터 혹은 마스코트 제작을 통한 홍보였다면, 홍보 3.0 버전은 세계관을 통한 홍보 단계이다. 아직 잘 시도되지 않은 홍보 단계다.

 

부안마실축제
붉은노을축제

 

지역 판타지의 요건

지역 판타지는 1. 기존의 지역 이야기를 흡수할 것, 2. 현대성을 갖출 것, 3. 축제를 넘는 부가가치를 창출할 것이라는 세 가지 요건이 필요하다. 특히 1번 요건은 필수인데, 만일 그 과정을 놓친다면 지역의 전승 이야기와 충돌해 해설사, 향토 연구자 등 지역민들이 외면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더불어 전통의 계승이라는 큰 가치도 놓치게 된다. 2번, ‘현대성’은 점점 이야기 소비자가 젊어지기 때문이고 그들은 현대적 감수성을 가진 웹툰, 웹소설, SF와 판타지 등에 익숙한 세대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꿈꾸는 여신, 마실 이야기』에서는 현재 가장 핫한 소재인 AI 비서 ‘키티’를 등장시켰다. 3번, 부가가치 창출은 단순히 기존에 있던 이야기들의 편집 전승만이 아니라 지역과 창작자가 추구하는 신 가치(new normal)를 중심으로 재창조하는 가치들이다. 그래야 역사는 변화한다. 조앤 롤링이 쓴 해리포터가 단순히 마법사 이야기의 재현이었다면 『그림 형제 동화』 수준에서 머물렀을 것이고, 루엘 톨킨의 방대한 서사시인 『반지의 제왕』도 핀란드 신화 수록 이야기인 『칸타빌레』 수준에서 멈췄을 것이다. 셰익스피어, 안데르센, 조지 루카스(그의 출세작인 <스타워즈>는 조지프 캠벨의 『천의 얼굴을 가진 영웅』에서 영감) 등은 기존의 이야기를 창조적으로 재해석해 새로운 인간형 창조, 아름다움과 선의 의지, 우주와 영웅 등 새로운 가치와 결합해서 보편적인 인기를 얻었다.

 

 이번 부안마실축제를 계기로 지역 판타지 창작을 하면서 내가 바라는 것이 하나 생겼다. 먼저 한국의 최근 축제 현상을 보자면, 한국은 축제 공화국이라고 할 정도로 많은 축제가 생겼는데 대부분 세계관으로서의 판타지 요소가 약하다. 우후죽순 모방이 많고 기능성만 부각하거나 지자체 다양한 이야기와의 총체적(holistic) 연결성도 약하다는 얘기다. 그러다 보니 지속성도 약하다. 지자체장의 취향에 따라 축제 정체성이 흔들리기도 한다. 이는 주민들이 공감하고 구축한 중심 세계관이 빈약해서다. 축제는 기본적으로 꿈의 서사다. 기능주의가 서사를 침범하면 그 축제는 이류로 전락하기 마련이다.

 

 그래서 그를 보완하는 수단으로 축제+지자체의 별(別)다른 세계관을 담는 판타지 제작을 권하는 바다. 내 예상에 의하면 자연물/전설/농수산물/놀이와 일탈을 주된 축제 내용으로 하는 곳은-부안, 춘천, 보령, 장흥처럼- 그것이 상대적으로 수월하고, 다른 어떤 곳은 좀 까다로울 것이다. 까다로운 곳은 김밥, 라면, 맥주 축제처럼 기능성이 확실하고 단순하거나 역사/인물 축제처럼 사료에 기반한 확실한 역사성이 있어서 그를 환상으로 전치(轉置)하기 힘든 지역일 것이다. 후자는 특히 환상보다는 고증과 주민 참여, 현대적 해석이 더 중시된다. 그것은 한계다. 그럼에도 대전제 즉, ‘축제는 꿈의 서사’라는 것을 인정한다면 한국의 더 많은 축제가 3.0 홍보 수단으로서 판타지 형식을 도입한 자체 세계관 구축을 바란다. 그래야 지자체 서사가 재구성되며 다양한 세대가 들어온다.

 

△ 필자:  황인선- 작가 겸 문화 마케터. 전 춘천마임축제 총감독

작성 2026.05.20 15:56 수정 2026.05.20 15: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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